明 邢玠 [經略御倭奏議]의丁酉再亂 史料 考察

Research on the [Jinglue Yuwo zhouyi(經略御倭奏議)] of Xing jie(邢玠) during the Japan’s Second Invasion of Korea in 1597-1598(丁酉再亂)
  • 박현규

초록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삼국이 참전한 국제 전쟁이었다. 전란이 발발하자 많은 명군이 조선으로 들어와 활동하면서 전쟁과 관련된 많은 기록들을 남겼다. 『경략어왜주의 』는 정유재란기 조선에 나와 있던 명 군부를 총괄한 군문 형개가 남긴 주본집이다. 1597년(만력 25)부터 1600년(만력 28)까지 전란과 관련된 중대한 군무를 담은 주본을 명 조정에 올려 보내고, 또 명 조정이 주본을 검토하고 신종제가 재가한 내용을 기술해놓아 사료 가치가 높다. 현재 절강 영파 천일각에 유일 명각본으로 소장되어있다. 원래 10권본인데, 아쉽게도 잔책 5권본(권2, 4, 6, 9, 10)만 남아 있다. 정유재란 초기 명 군부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군량에 대해 남겨놓았다. 병력 6만여 명과 말 2만 필이 1년에 사용할 군량이 54만 석인데, 당시 조선으로 운송할 수 있는 양이 무사고 시 25만여 석, 사고 시 20만여 석으로 최소한 30만 석 정도 부족하였다. 명 군부는 부족한 양을 옮기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하였다. 해로로는 군량을 옮길 상선 20척을 모집하고, 또 선박 30척을 급히 건조하도록 했다. 육로로는 각 군무가 나귀 1,200필을 급히 구매하여 운송에 투입시켰다. 초기에 명 군부는 요동반도에서 한반도 서해안으로 이어지는 해상 노정을 잘 알지 못했다. 처음에 여순에서 압록강 하류의 의주로 옮겼다가 의주에서 다시 평양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나중에 조선 조정의 건의를 받아들어 여순에서 곧장 대동강 입구인 광량진으로 옮기는 방안으로 결정했다. 정유재란 초기에 투입된 말은 27,639필인데, 불과 1년만에 절반 정도인 13,466필만 남았다. 이들 가운데 전투에서 희생당한 말의 숫자는 소수이고, 대다수가 조선과 중국과 다른 신토불이와 지형, 과로 등 원인으로 폐사했다는 의외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남원성 패전에서 희생당한 말이 3,400필이나 되었다. 명 양원이 지키던 남원성이 함락당한 원인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중과부족, 지원군 미도착, 방어책의 실패 등을 꼽았다. 이번에 양원이 남원성 전투에서 패배를 예측하고 자신의 행장을 미리 빼돌렸고, 또 양원에 의해 체포당한 심유경이 보복 차원에서 비밀리 小西行長에게 남원성 방어의 허실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었던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정유재란 발발하자 명 군부는 일본 수군이 많다며 소규모이지만 전투에 나서는 수군 파견을 결정했다. 이때 절강수군 3천 명, 복건수군 1천 명, 오송수군 1천 명 등 5천 명을 보낼 예정이었다. 얼마 후 칠천량해전으로 조선 수군이 궤멸되자, 일본 수군이 바다를 통해 중국 대륙으로 침공해올 것을 염려하여 대규모 수군을 편성하여 조선으로 보냈다. 이때 중국 대륙을 방어하는 지역을 보면 천진과 산동 방어를 최우선으로 삼았고, 복건과 광동 지역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해상 전력 보강하기 위해 천진조선창에서 전선을 대대적으로 건조하거나 보수하는 대책을 세웠다. 전란이 끝난 후에 명 조정은 북경 궁궐 午門에서 생포한 일본군 장수급 61명을 바치고 太廟와 교외에 보내어 승전을 고하는 의식을 펼쳤다. 명군이 살해했거나 생포했다고 한 일본군 장수급 명단을 보니 전훈을 과시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장수급 인물로 둔갑시키거나 일본이 협상용으로 보낸 차사를 포함시켰다. 노량해전에서 살해했다고 한 石曼子(島津義弘)나 생포했다고 한 平秀政(中川秀政)과 平正成(豊臣正成)은 일본으로 무사히 돌아갔던 장수이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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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明 邢玠 [經略御倭奏議]의丁酉再亂 史料 考察
제목 (타언어)
Research on the [Jinglue Yuwo zhouyi(經略御倭奏議)] of Xing jie(邢玠) during the Japan’s Second Invasion of Korea in 1597-1598(丁酉再亂)
저자
박현규
DOI
10.24161/CHR.113.35
발행일
2018
저널명
중국사연구
113
페이지
35 ~ 62